산객 구하느라 놓친 인생 첫 대청봉…"인명이 산보다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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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객 구하느라 놓친 인생 첫 대청봉…"인명이 산보다 우선"

 비번 중 등산객 구조한 소방관 임용우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숨을 되돌릴 수 있었다.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숨을 되돌릴 수 있었다.
임용우씨는 아내에게 작은 거짓말을 남기고 인생 첫 설악산을 찾았다. 아내는 "아직 아이도 어리고 하니 그렇게 먼 산은 가지 말라"고 늘 신신당부했었다. 그래서 그 말을 따라 3년 동안 집 근처 산만 다녔다.

그런데 도통 아른거리는 설악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산에 간다고는 말하지 않고 1박 3일의 시간을 냈다. 집이 있는 순천에서 7시간을 운전해 설악에 들었다. 원래 계획했던 코스는 소공원에서 출발해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에 들고 대청봉을 오른 뒤 천불동 계곡으로 원점회귀하는 것이었다. 힘든 코스기 때문에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틈틈이 순천 주변 산을 다니며 훈련도 충분하게 했다.

그리고 귀한 휴가를 들여 시작된 설악. 징검다리 연휴였던 지난 6월 7일이었다. 일찌감치 산행을 시작해 오전 6시 50분쯤 마등령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도와달라"는 외침이 들렸다.

쓰러진 등산객을 업고 이동하고 있는 임용우씨.
쓰러진 등산객을 업고 이동하고 있는 임용우씨.
"달려가 보니 중년 남성으로 보이는 등산객이 쓰러져 있었고, 다른 등산객 한 분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고 있었어요. 제가 이어받아서 동공을 확인하니 이미 확장돼 있고 귀를 대봐도 심장이 완전히 멎어 있는데다 몸도 강직된 상태였죠. 동공이 좁아져 있으면 쇼크인 거고, 넓어지면 모든 근육이 이완된 거라 저는 솔직히 그때 이 분이 이미 사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세를 교정해 기도도 제대로 확보하고 목에 이물질이 있는지도 재확인한 뒤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기도확보를 위해 손으로 입을 열고 있는데 턱관절 압력이 심해져 재갈 대용으로 주변에 나무막대기를 구해 달라고 요청도 했다.

그때 기적처럼 숨이 돌아왔다. 보통 같으면 자연스럽게 눈을 뜰 텐데, 무슨 탓인지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임씨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해치는 줄 알고 격렬히 저항했다. 깜짝 놀란 그를 진정시키느라 또 진땀을 뺐다.

여수 금오산. 임씨는 집인 순천에서 멀지 않은 산 위주로 등산을 다녔다고 한다.
여수 금오산. 임씨는 집인 순천에서 멀지 않은 산 위주로 등산을 다녔다고 한다.
한 숨은 돌릴 수 있었지만 그래도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구급헬기를 요청했는데 사고 지점까지 바로 올 수 없어 이송 가능한 마등령 삼거리 부근까지 400m 정도 이동해야 했다. 임씨는 "앞서 인터뷰한 모 언론사 기자는 제가 이 분을 업고 400m를 달려갔다고 했는데 그건 과장된 것"이라고 했다.

"그곳이 얼마나 험한데요. 저도 5~6번 쉬면서 간신히 갔어요. 그것도 다른 분이 도와주셔서 가능했어요. 제가 갔을 때 최초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던 분이 계셨는데 심폐소생술이란 게 사실 가장 처음이 중요한 거거든요. 제가 이어 받고 나서도 계속 주변에 머물면서 도와주셨고, 업고 이동할 때도 뒤에서 균형을 잡아주셨어요. 제가 아니라 이 분이 진짜 영웅입니다."

헬기가 오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헬기가 이들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해 주변을 맴돌았다.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20~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일시에 모두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줬다.

지리산을 산행 중인 임용우씨.
지리산을 산행 중인 임용우씨.
마등령 삼거리에 뜬 수십 개의 빛

임씨는 "많은 분들이 구급헬기 오는 게 신기하니까 동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내 말 한마디에 한 분도 빠짐없이 동영상을 끄고 플래시를 켜줘서 무척 감동이었다"고 전했다. 이후 쓰러졌던 등산객은 의식을 완전히 되찾았고, 헬기에 타기 직전 임씨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임씨는 "나중에 확인한 결과 이 등산객도 인천에서 5시간을 운전해 설악으로 와서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컨디션으로 약 40° 경사에 2km 가까운 마등령 오르막은 다소 무리였던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임씨가 이토록 능숙하게 응급구조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2009년 소방에 입문하고 고흥지역에서 16년째 임무를 수행하는 베테랑 화재진압대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근무지가 시골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많아 심정지 환자 구조경험이 풍부하다"며 "대도시 소방은 사고가 많아 자기 분야 사고에 전문적으로 대처하지만 시골은 여러 사고를 다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사고 수습을 마무리한 후 임씨는 마저 계획대로 산행을 서둘렀다. 비경을 간직한 공룡능선을 감탄하며 넘었는데 원래 일정보다 1시간 30분 정도 지체되고 있었다. 그래서 대청봉을 포기하고 즉각 하산을 결심했다. 그는 "오후 3시가 되면 무조건 하산하는 걸 지키고 있다"며 "사고를 목격한 경험이 많이 있기에 날씨가 어두워지면 체력도 떨어지고 심리적으로도 위축돼 사고 위험이 높아져서 세운 나름의 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대청봉을 찾을 계획이다. 전화위복이 된 것은, 이번엔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의 자초지종을 들은 아내는 그가 선행을 했다며 흔쾌히 다가오는 가을 단풍철 설악 산행을 허락했다.

2 Comments
와,,대박
멋지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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